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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목사님은 왜 설교를 못할까?"를 읽고...
    2021-09-08 07:13:52
    이상일
    조회수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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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페이스북에 굉장히 눈에 띄는 책 제목이 내 눈길을 끌었다.

    우리 목사님은 왜 설교를 못할까...

    최근의 나는 깊은 고민 하나를 몇년째 하고 있다.

    평생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살아야 하기에, 어떻게 하면 설교를 잘 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진심이 담긴 말씀을 캐내어, 청중이 가장 소화하기 좋은 형태로 전달할 수 있을까... 이런 수준높은(?) 고민이었다.

    그런 차에 나의 '발전적인 고민(?)'과는 반대 양상의 네거티브 제목에 꽂힌 것이었다.

    어쩌면 그 제목속에서 나의 자의식이 투영된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 사역과 육아와 연애로 바빠 통 책 읽을 기회가 없었는데 꼭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난 아무 정보도 없이 이 책을 구매하게 되었다

    주문한지 며칠만에 내 책상앞으로 달려와주신 서적님...

    두껍지 않은 책이기에 단숨에 두번이나 읽게 되었다.

    본서의 저자는 "데이비드 고든"이라는 이름을 교수이다. 단순하게 설교학만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미디어 생태학'이라는 학문도 가르치는 사람이다. 어느 날 교편생활중 직장암 3기에 걸려서 치료를 받다보니 자기가 이제까지 무엇을 하면서 살았는지 자문하게 되었고, 당장 죽게 되지는 않겠지만, 긴박한 심정을 가지고 이시대의 설교자들의 회복을 바라며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잘 하셨어요 교수님!

    본서는 총 5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달라진 신학생들

    2장 책맹 설교자들

    3장 다시 글쓰기를 고민하자

    4장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를 하라

    5장 설교자의 세 가지 감성

    각장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1장 '달라진 신학생들'에서는 전혀 요점이 분명치 않은 설교가 난립하고 있다는 비판으로 시작한다. 목회자가 하나님의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목사의 견해만 제시하는 경우가 너무 많으며, 그조차도 요점이 분명치 않아 들어줄수 없다고 하니 마치 저자의 울분에 느껴지는 것 같다.

    그도 그럴것이 저자는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대부분의 교인들이 목사님에 대하여 '설교에 관해서만큼은' 기대하지 않고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목회자에게 말씀선포는 기대하지 않고, 다른 부수적인 것, 심방을 열심히 한다던지, 행정에 능하다던지, 청소년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던지하는 것이라도 잘하니 그정도면 괜찮은 것 같다고 생각하며 기대를 접는 이 현상이 맞지 않다고 느꼈으리라..

    그러면서 저자는 로버트 루이스 대브니가 제시하는 설교의 가장 '기본적'인 7가지 요소를 제시한다.

    1) 충 실 성- 하나님의 사신답게 성경에 드러난 하나님의 생각만 전해야 한다.

    2) 통 일 성- 잡소리는 빼고 통일된 한가지의 주제만을 말하되, 회중의 영혼에 각인이 남도록 전해야 한다.

    3) 복음주의 어조- 복음주의가 설교의 알맹이가 되어야 한다. 십자가에 못박히셨던 그리스도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4) 교 훈 성- 설교를 들은 후 그 설교가 회중의 생각에 깊이를 더하도록 가르쳐라

    5) 역 동 성- 설교의 처음부터 끝까지 스토리가 연결되어 결론에서 정점을 때려라

    6) 영 향 력- 설교를 들은 청중은 동의하든 반대하든 고민하게 만들라

    7) 짜 임 새- 진리를 생각없이 나열하지 말고, 가지런히 배열되도록 하라.

    저자는 이런 상황을 설명한 후 화제의 관심을 신학생들에게로 끌고 간다. 지금 신학교에 입학하는 신학생들이 살아온 문화가 그들에게 영향력을 끼쳤다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달라진 문화란 텍스트에서 이미지, 영상이 지배하는 문화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다.

    예전에는 글을 쓸 기회가 많았고, 편지 하나를 써도 어떻게 글을 구성할 것인가 고민들을 했는데 요즘은 책을 읽지도 않고 쓰지도 않고 이미지와 영상에 익숙하기 때문에, 그런 환경속에서 자란 신학생들이 과연 탁월한 설교자들이 될 수 있겠는가? 이게 바로 저자의 고민인 것이다.

    2장 '책맹 설교자들'에서는 1장에서 제기한 문제를 조금 더 심화시키고 있다. 설교자들이 텍스트에 익숙하지 않다보니 책을 읽을때 그 책에서 '내용'을 가져올 생각만 하고 그 저자의 마음을 공유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난 저자의 이 이야기를 들으며 딱 내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책을 읽거나 성경을 읽으면서 나 역시 '설교거리'를 찾지 않았던가?! CS.루이스의 말마따나 난 텍스트를 사용하려 했지 수용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텍스트의 묘미는 '의미'를 찾아내는데 있다는 것을 왜 난 생각하지 않고 있었을까? 그 이유를 저자는 TV에서 찾아주고 있다.

    의미를 찾아내는 감성을 기르려면 사물을 오래도록 보며 묵상해야 하는데 TV는 3초마다 화면이 한번씩 바뀌는 매체다. 시청자의 흥미를 어떻게 자극할 것이며 호주머니에서 어떻게 돈을 빼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매체이다 보니 그러한 TV에 익숙해진 이 시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사물을 오래도록 묵상하며 의미를 찾아내겠는가? TV에 관한 한 모든 것은 가치가 없으며 TV는 가치 없는 것을 위한 완벽한 매체라는 저자의 주장에 나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TV 안사기를 정말 잘했다!

    그렇다. 책을 읽으면 인내심이 생기고 주의지속시간이 길어지지만, TV를 시청하면 참을성이 사라진다. 고로, 독서는 중요한 일에 알맞는 것이고 TV는 시시한 일에 알맞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에서 자란 목사가 전하는 설교? 바탕부터가 너무 안좋다는 것이다. 이미지와 영상에 익숙해져 중요한 의미를 찾아내는 감성을 다 잃어버린 것이다. 적어도 목회자는 시대를 분별하는 눈이 있어야 한다.

    3장 '다시 글쓰기를 고민하자'

    이 파트의 이야기는 간단하다. 전화라는 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우리는 멀리 있는 사람과 소통하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보지 못하고 음성만 듣다보니 상대의 반응을 알 수 없게 되고, 점차 반응을 살피는 능력이 떨어졌으며, 두서없이 이 말 저 말을 하는 전화의 특성으로 인해 짜임새있게 글을 쓰는 능력도 떨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영향을 많이 받은 목회자는 본문을 읽다가 떠오른 두서없는 생각들을 얼기설기 엮어서 설교를 하는데 당연히 짜임새도 통일성도 빈약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19세기에는 편지 한장을 써도 주제 못지않게 서술방식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요즘은 그런게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런 문화에서 살고 있는 구성원에서 생각이 깊고 잘 짜여진 설교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저자의 한숨어린 걱정이다. 설교문을 작성할 때부터 깊이있는 생각과 짜임새를 고민해야 함을 느끼게 된다.

    4장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를 하라

    저자에 의하면 설교란 '그리스도의 위격과 성품, 사역을 전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설교에는 그 내용의 중심이 그리스도가 아닌 경우도 대단히 많다. 아예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요즘 출애굽기를 설교하고 있는 나 또한 그러하다 ㅜㅜ 그러한 교회에게 저자는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가 중심이 아닌 설교가 과연 설교인가 되묻는다.

    예를 들자면 이러한 설교들 말이다.

    1. 도덕주의 설교- 인간의 행실만을 중요하게 여겨 고치려는 유형 /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가볍게 여기게 된다.

    2. 요령을 가르치는 설교- 요령만 잘 익히면 죄인도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라는 식의 유형 / 우리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으며, 구원의 능력은 오직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무시하게 된다.

    3. 자기성찰의 설교- 자꾸 자기만을 돌아보게 만든다. 난 정말 믿고 있는가? 내 믿음은 바른 믿음인가? / 이러한 마구잡이 비판이 과연 신앙을 성장하게 하는가?

    4. 사회복음 설교- 우리 문화의 잘못된 점을 정부의 힘으로 강제적으로 개선시켜야 된다는 사회주의 운동같은 유형. / 흑백논리에 심취하게 된다.

    저자는 그러한 설교로는 교인을 영양실조에 빠지게 만들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병자에게 영양이 필요하듯, 영적인 병자, 즉 죄인된 자에게는 죄를 사하여 주시는 그리스도 예수와 십자가 보혈을 전하고 그것을 통해 믿음을 자라게 해야 도덕적이어지고, 자기성찰을 얻으며 삶의 요령을 터득하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저자는 이러한 것들을 통해 설교가 회복을 될 수 있다며 그 해결방법을 5장으로 가져간다.

    5장 '설교자의 세가지 감성'

    저자는 설교자가 회복해야 할 감성을 문화에서 찾고자 한다. 설교를 진단하는 문화, 텍스트를 저자 입장에서 정독하는 문화, 틈나는대로 편지나 글을 쓰는 문화, 로터리클럽에 가입하여 그곳의 강사들과 글과 생각을 교류하는 문화, 일반 고전 작품의 맛을 음미하는 문화, 이러한 문화활동들을 통하여 좋은 감성을 지닌 좋은 사람이 되면 자연스럽게 좋은 설교자가 될 것이라고 저자는 기대하고 있다.

    이 얇은 125p의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결국 음성문화에서 영상문화로 바뀌면서 삶의 질과 체득하는 경험자체가 바뀌었고, 그 영향으로 글을 쓰거나 읽는 능력마저 수준이 낮아짐에 따라 그 문화속에서 살아가는 설교자 또한 깊이와 수준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는'현상진단'과 이를 위한 해결책으로 5장에 기록된 여러 방법들을 통해 이전 수준의 문화감각과 좋은 감성을 회복하라는 저자의 제언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생각해보면 나 또한 영상에 익숙한 세대이며 누구보다도 모니터앞에 오래 앉아 있는 사람이다. 근래들어 부쩍 약해진 집중력의 원인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바로 이 책을 통해 원인을 찾게 되어 기쁘다.

    재미있는 것은 저자가 본서에서 누누히 '텍스트에서는 주제만큼이나 형식도 중요'하다 라고 이야기하는데 본서를 집필할때는 그러한 것을 많이 반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본서의 독자층이 이미 달라져버린 문화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다보니 고전적으로 형식을 사용하여 기록한다해도 읽어내지 못할 것이라 여겼던 걸까? 미디어생태학의 고수이시니 그럴지도...

    뭐, 어쨌든, 저자의 이야기는 나에게 충분히 전달되어져왔고, 납득이 될만큼 이해하기 쉽게 기록했다. 두껍지 않아 부담도 없고, 요즘처럼 집중을 잘 못하는 세대들에게도 충분히 일독을 권할만한 책이다. 특히, 주의지속시간이 짧고, TV를 많이 시청하며, 설교를 위해, 내용을 찾아내기위해 성경을 보는 사람들이 큰 도움을 받을만한 책이라 생각되며 난, 이 책 추천할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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