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의심하지 않는 믿음’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의심하지 않고 믿는 게 정말 좋은 신앙일까요? 그러면 의심을 하는 것은 죄인가요?
아마 한국교회에서 의심이 많은 사람의 대명사가 ‘도마’일 겁니다. 찬송가 135장의 가사에도 ‘의심 많은 도마처럼’이라고 나오잖아요? 그런데 아십니까? 성경에서 도마가 의심하는 장면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할 때 딱 한번 나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한 건 다른 10명의 제자들도 똑같았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제자들에게 가서 전했을 때, 아무도 안 믿었거든요. 그러니 만약 도마를 의심 많은 제자라고 하려면 나머지 10명의 제자도 모두 의심이 많다고 해야죠.
도마는 의심이 많은 게 아니라 신중한 사람입니다. 목수 출신이기 때문에 매사에 대충대충이 없거든요. 눈대중으로 길이를 대강 알아도, 반드시 자로 재어보고 나서야 톱질을 시작하는 확실한 사람이라는 거죠. 그리고 확실한 것에 대해서는 목숨까지도 걸 수 있는 소신 있는 사람이었죠.
요한복음 11장을 보면 나사로가 죽을 병에 걸린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예수님이 나사로에게 가려고 할 때, 모든 제자들이 말렸습니다. 왜냐하면 얼마 전 바로 그곳에서 죽을 뻔했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가려고 하시자, “죽더라도 예수님과 함께 가자”면서 제자들의 충성심에 불을 붙였던 사람이 도마였습니다. 담대하고, 의리가 있고, 주님을 위해서는 생명도 걸 수 있었던 사람이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한 첫 번째 인물이 도마입니다. 죽기 이전에는 그냥 스승인 줄 알고 따라다녔지만, 부활하신 후에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식하고 고백한 겁니다.
물론 베드로가 먼저 신앙고백을 하긴 했죠. 그런데 베드로는 그 신앙 고백 이후에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했었잖아요? 하지만 도마는 달랐습니다. 신앙고백을 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지만, 신앙고백 이후에는 그 신앙고백이 자기 목숨까지도 거는 소신있는 사람이거든요.
이후에도 보면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 인도까지 갔고, 마지막 순교의 순간까지도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신앙의 지조를 지켜냈습니다.
확실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그러나 확실해진 것에 대해서는 생명까지도 걸 수 있었던 도마. 저는 우리에게 이 도마의 자세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변에는 의심하지 않고 순수하게 믿다가 이단에게 속아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생활하다 보면 의문이나 의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심은 죄가 아니에요. 의심이 되면, 성경을 통해서 확인해보면 되는 거죠. 그 확인 과정을 통해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겁니다. 어차피 저와 여러분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눈으로 보지 않고도 믿는 자들이지 않습니까?
다른 곳에 가서 설교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비판적으로 믿고 아멘하시면 안됩니다. 베뢰아 성도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것이 그러한가 ?”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66권의 모든 성경을 날마다 상고하며 확인해봐야 돼요. 그러고 나서, 내가 오늘 들은 설교에 성경의 진리가 바르게 실려있다고 인정이 된다면, 여러분은 그 메시지에 여러분의 생명까지도 걸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도마의 신앙이었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의 아멘에 ‘도마의 신중함’이 더해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평소에 성경을 한 권도 빼놓지 말고 모두 공부해두어야겠죠.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맞는다는 것이 확실하게 깨달아지면, 도마가 그러했던 것처럼, 흔들림 없이 그 진리에 여러분의 모든 것을 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단에게 속지 않는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글 l 이상일 목사(군산삼학교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