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목사님~ 안녕하세요?
지난주 성경강좌 숙제로 출애굽기 읽으며 40장 마무리 하면서 성경지식에 성막에 대해 궁금합니다~
36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 앞으로 나아갔고37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며38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
1. 성막을 시내산 1년 거주하면서 6개월동안 제작했는데 조립식일까요?
2. 시내산을 떠나 행진할때 구름이 성막에 떠오를때는 행진하였다는것은 이동식인것 같은데 성막을 폈다 접었다 했을까요?
3. 솔로몬 성전 건축전까지 성막이 존재했는지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많은 성막이 존재했는지요?
성경 지식이 짧아 성막에 대한 유치한 질문이네요..
안녕하세요!
전혀 유치하지 않은, 좋은 질문입니다.
우리가 성막에 대해서는 자주 접할 기회가 없다보니, 이런 저런 궁금증이 드는 건 너무나 당연하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동안 광야생활을 할 때, 계속 옮겨다니다보니, 집을 건축할 여건이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천막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지요.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내는 천막보다 조금 더 큰 천막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구별하셨기 때문에 '성막'이라 불리웠던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만나는 장소로 정하셨기 때문에 '회막'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1. 성막을 시내산 1년 거주하면서 6개월동안 제작했는데 조립식일까요?
성막은 이스라엘에서 탈출한지 1년째 될때쯤 완성이 되었습니다. 탈출하여서 50일째 될때 시내산 언약을 맺었고, 40일동안 성막 설계도와 레위기 언약을 받았으며, 중간에 금송아지 문제로 인해 다시 40일에 시내산에 올라갔다 왔으니, 실제 성막 제작 기간은 약 8개월 가량 될 겁니다. 이동하면서 쳤다가 접었다가 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조립식이었고, 레위 자손중에서 게르손, 므라리, 고핫 자손이 각자 할당된 고유의 임무가 있었습니다.
2. 시내산을 떠나 행진할때 구름이 성막에 떠오를때는 행진하였다는것은 이동식인것 같은데 성막을 폈다 접었다 했을까요?
네, 위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조립식이기 때문에, 폈다가, 접었다가 했습니다.
3. 솔로몬 성전 건축전까지 성막이 존재했는지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많은 성막이 존재했는지요?
성막은 하나만 있었습니다. 성막의 역사에 대해서는, 아래의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성막의 역사>
성경은 성막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주지 않는다.
이는 성경이 자료집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사건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막의 건립에 대해서는 비교적 자세한 언급이 주어진 것은 이것이 갖는 구속사적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반면 성막 건립 후 성전으로 대체될 때까지의 역사가 모호한 것은 히브리인들이 성막에 대한 규례를 철저히 지키지 못했기 때문으로 짐작할 수 있다.
1. 성막의 건립
성막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명령대로 만들어졌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 도착한 때가 3월이며(출19:1) 성막의 봉헌이 그 이듬해 1월 1일에 있었다.(출40:2)
이때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보여 주심으로(출40:34) 당신의 임재하심을 나타내셨으며,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이를 보호했을 뿐 아니라 성막을 옮겨야 될 시점을 계시하셨다.(출40:37,38)
2. 광야의 성막
이스라엘은 성막 봉헌 후 50일을 시내산에서 더 머물렀으며 그해 2월 20일에 이동을 시작했다.(민10:11)
이때 레위인은 법궤 등 성막의 부속품들을 어깨에 메고 옮겼으며(민4:5) 성막 본체는 해체하여 주로 수레에 실어 이동했다.(민7:1-11)
광야 여행 도중 그들의 이동 경로는 부분적으로 확인되나(민33:16-49) 성막을 세운 장소는 불 분명하다.
이는 항상 전쟁을 염두에 두며 행군을 준비하는 가운데, 정규적으로 희생 제사를 드리거나(암5:25) 정상적으로 성막을 세우기 힘들었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3. 길갈의 성막
요단강을 건넌 후 가나안 정복이 진행되는 동안 성막이 임시로 안치된 장소는 여리고 근처의 길갈이었다.(수4:16,5:10,9:6)
이곳은 사람이 살지 않았고 무덤으로 더럽혀지지도 않았으므로 적당한 장소로 여겨졌을 것이다.
4. 실로의 성막
가나안 정복이 일단락된 후 성막은 에브라임 지파의 성읍인 실로로 옮겨졌다.(수18:1)
여기서 성막은 '여호와의 전'으로 불리워지는데(삼상1:9) 이는 이곳이 고정된 장소였음을 암시한다.
한편 사사 시대에는 성막이 실로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각 지역에 다른 예배처소를 만들었으며(삿18:31) 실로에서의 제사 역시 형식에 그친 정도였다.(삼상 2:14) 이러한 배교로 인해 법궤는 블레셋에게 빼앗겼으며(삼상4:11) 실로도 함락되었다.(시78:60,렘7:12)
그러나 성막을 블레셋에 빼앗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5. 모호한 시기
실로 함락 후 성막은 다시 길갈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사무엘과 사울이 길갈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는 기록에서 암시 받을 수 있다.(삼상10:8)
그러나 이와 별도로 성막의 주요 성물의 하나인 법궤는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반환되어 벨세메스에 잠시 머물렀으며(삼상6:19) 기럇여아림에 20년 동안 있었다.(삼상7:1,2)
6. 놉의 성막
놉에 제사장 아히멜렉이 있었으며 그에게 여호와께 드린 거룩한 진설병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볼 때(삼상 21:1-6) 사울 시대에 성막이 놉에 있은 적도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정확한 것은 아니고, 불분명하다.
7. 기브온의 성막
옛적 모세가 광야에서 지은 여호와의 장막과 번제단이 다윗 당시 기브온 산당에 있었다.(대상21:29)
8. 두 성막의 시기
다윗은 기럇여아림에 있는 법궤를 두기 위해(삼하6:11) 시온에 성막을 새로 준비하였었다.(삼하6:17)
따라서 당시는 제단이 있는 기브온의 원래 성막과, 법궤가 있는 예루살렘의 새로운 성막이 병존했을 것이다.(왕상3:1-3, 법궤가 아니라 성막이 두개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
9.성전의 건립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립함으로써 성막의 기능은 성전으로 옮겨졌다.
따라서 B.C. 1445년에 만들어진 성막은 B.C. 959년까지, 즉 487년간 예배의 처소로 존속했다.
그 이후에 이것은 예루살렘 성전의 종교적 유물로 보관되었으나(왕상8:4)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한 성전 파괴시(B.C.586)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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