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사랑하는 그들을 위해 바로 가지 않으시고 왜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셨을까요?
샬롬~ 언제나 귀한 하나님 말씀을 잘 가르쳐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성경을 읽다가 궁금한 게 있으면 꼭 질문하라고 하신 말씀에 질문을 올립니다.
요한복음 11장에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예수님의 일하심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직 요한복음에만 나와 있는 내용이라 평상시에도 여러차례 잘 읽어본 말씀입니다.
다만 이번에 마음에 한가지 의문이 생긴 구절이 있어 문의 드립니다. 바로 6절 말씀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 그리고 나사로를 많이 사랑하시는 예수님이신데 나사로가 병에 걸려 죽게 되었다고 하셨을 때 예수님은 그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나사로를 살리시겠다는 뜻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랑하는 나사로를 위해 어째서 바로 가지 않으시고 이틀을 거기서 더 유하시고 계셨을까요?
사랑하는 이를 살리고자 하시는 관점에서 보자면 그 소식을 듣고 바로 가실 법한데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아니면 요단 저편으로 가신 그 지역에 좀더 남아 거기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유하셨다면 며칠후 왜 마리아의 애통의 눈물을 보시면서 같이 우셨는지 잘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의 때와 우리의 때가 다르다고 그 다름이 믿음의 분량이라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틀이나 거기에 유하셨다는 말씀에 왜 바로 가지 않으시고 거기에 이틀동안 계셨으며 왜 성경에 이틀이나 계셨다는 말씀을 기록해 놓으셨는지, 우리가 알아야 할 하나님의 어떠하심이 있는지 아니면 그냥 그만큼 거기에 계셨다는 것을 뜻하는것인지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답변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저도 같은 궁금증을 가져본 적이 있습니다.
소식을 들은 곳에서 이틀을 머무르신 것도 의문이었고, 나사로를 다시 살리시기 전에 눈물을 흘리신 것도 그 이후의 부활 사건과 모순되는 것처럼 느껴졌었거든요. 살리실 것이면 슬프지 않을 것이고, 슬퍼하여 눈물을 흘리실 정도였다면 방법이 없어야 일관성이 있는 것 같은데, 왜 이러셨던 것까? 이해가 안되었었지요.
그러면, 먼저 본문을 봅시다.
요 11:1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요 11: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요 11: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요 11: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요 11: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요 11: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요 11:7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요 11:8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요 11: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요 11:10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요 11: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요 11:12 제자들이 이르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요 11:13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요 11:14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요 11: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요 11:16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요 11: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요 11: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요 11: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요 11:20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요 11: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요 11: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요 11: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요 11: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요 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 11: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요 11:28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요 11:29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요 11:30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요 11: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요 11: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요 11: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요 11: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요 11: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요 11:36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요 11:37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요 11: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요 11: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요 11: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요 11: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요 11: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 11: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요 11: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이 본문에서 6절을 보면,
요 11: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이렇게 되어 있죠? 나사로가 병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바로 가지 않으셨어요. 이틀을 더 계셨어요. 출발이 늦어진 것은, 나사로가 살아 있을 때 도착하지 못하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가 되죠. 가는데 걸리는 시간도 며칠 걸리기 때문에, 결국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이나 되어 도착하게 되거든요.
요 11: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확실한 것은, 예수님은 나사로를 사랑하셨다는 겁니다.
요 11: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그러면, 사랑하는 나사로가 병들었는데도, 왜 속히 서두르시지 않았던 걸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요 11: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에, 누이들의 마음이 아래와 같은 상태가 될 때까지 출발을 미루신 겁니다.
요 11: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죽은지 나흘이 되어 냄새가 난다는 건, 되살아날 가능성이 아예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누이들이 '나사로는 절대로 되살아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까지, 기다리신거죠. 의도된 지연입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사랑하기 때문에 얼른 출발할 것' 같은데, 예수님의 시간은 우리와 달랐던 겁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기다렸던 것'이죠.
예수님의 목적은, 단지 병을 고치는데 있는게 아니라,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있었고, 그 사건을 통해, 마르다와 마리아 뿐만 아니라, 제자들과 유대인들의 믿음까지 온전하게 세우고, 이 내용을 기록으로 남겨서, 이런 본문을 접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은 죽은 자도 살리시는 분이시구나?'하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즉, 더 큰 영광을 위해 ‘지금의 고통’을 허용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나사로가 죽을 것을 아셨고, 그래서 처음부터, 나사로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말씀하셨습니다 (4절).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은, 단순한 병 고침보다 훨씬 더 놀라운 부활의 능력을 보여주는 사건이거든요.
요 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은, '죽음'이라는 인간의 절망 안에서, 예수님이 생명 그 자체이심을 드러내려는 사건인 겁니다.
이 사건을 통해 마르다, 마리아, 제자들, 유대인들 모두가 예수님을 단순한 선지자나 기적 행하는 자가 아닌, 죽음까지도 이기시는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되었던 것을 보게 되는 거죠.
그러면, 나사로를 다시 살리시기 전에, 왜 눈물을 흘리셨을까? 그건 단순한 인간적인 공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보여주시는 겁니다. 고통당하는 자들과 함께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의 모습을 드러내시고, 죽음 앞에서 슬퍼하는 인생을 향한 긍휼하심이 하나님에게 있으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죠.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깊이 공감하시고 사랑하신다는 겁니다.
정리하면,
시간의 지연은 하나님의 무관심이 아닌 더 깊은 사랑의 방식입니다.
이틀이라는 지연은 우연이 아닌, 믿음의 성숙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의도된 '하나님의 때'입니다.
우리는 때로 하나님께서 ‘늦게’ 응답하시는 것처럼 느끼지만, 하나님의 시간은 항상 가장 정확하고 온전한 때입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깊이 공감하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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