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1. 오늘 말씀을 듣고 신약시대에 예수님이 오시면서 우리의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구원을 이루셨고 영생과 천국을 주셨습니다. 그럼 구약시대 사람들은 출애굽기 19장 5절~6절 말씀을 믿으며, 하나님말씀(레위기)를 듣고 읽고 실천함으로써 구원을 받는게 맞나요?
답변 1. 구원은 율법(레위기)에 달려있는게 아닙니다. 율법은 이미 구원받은 자에게 삶의 법도로 주신 것이지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심플한 요구입니다. 구약시대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진실하게 사랑하고, 순종하고, 즐거워하며, 삶에 거룩한 변화가 일어나느냐? 진리를 따라 사느냐? 말씀 안에서 거하며 살아가느냐?입니다. 구원받은 자라면 그러한 삶의 변화가 나타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구약시대 사람들은 출애굽기 19장 5~6절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잘못된 선민사상에 빠졌다고 말씀드린 것, 기억하시지요?
질문 2. 솔로몬왕처럼 아버지를 대신하여 성전도 짓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던 솔로몬이 나중에는 이방신들로 인해 솔로몬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던데 그래도 예전일로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시나요?
답변 2. 솔로몬은 젊은 날은 바르게 또 겸손하게 행하였던 인물이지만, 지혜를 얻고 부귀 영화를 누리게 되면서 결국 우상섬기는 산당도 짓고, 본인도 수백명의 부인들을 따라 우상숭배를 하여 타락하게 된 인물입니다. 솔로몬으로 인해 하나님은 참 많이 아파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솔로몬을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셨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그의 인생 말년에 쓴 전도서를 보면 자기 자신이 잘못된 길을 걸어갔음을 깨닫고 회개하게 된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사실 위의 질문은 대부분의 성도님들이 마음에 가질법한 질문입니다.
애매한 것 같지만 분명한 차이가 드러나도록 설명해볼게요.
1) 율법을 지킨다고 구원받는게 아닙니다.
2) 그런데 구원받은 자라면, 자연스럽게 율법의 정신이 삶속에서 나타납니다.
보통 예수님 시대 이전 사람들이 구원을 얻었는지, 이순신 장군이 구원받았는지가 가장 궁금하실 것 같아요.
먼저 말씀드리자면, 그들의 구원문제는 우리가 장담하여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서 확인해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구원은 하나님이 결정하실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성경말씀을 통해서 구원의 원리를 살펴보는 방법이 있겠네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예수님 시대와 그 이후의 죄만을 위한 사건이 아닙니다.
과거(구약시대), 현재(예수님 당시), 미래(오늘날의 우리)에 하나님을 믿게 될 사람들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예수님이 지금 뭐라고 말씀하셨지요?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않는 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보내신 분이 누구에요? 성부 하나님이시잖아요?
구약시대에서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 잘못했어도 진실하게 돌아온 사람들이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받아주셨음을 구약성경을 통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비록, 삼위일체라는 말을 들어본적도 없지만,
예수님을 만나본 적 없지만,
그것은 그들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하나님을 떠났다가도 하나님께 진정으로 돌아왔느냐?”입니다.
제가 지금부터 몇 사람의 이름을 나열해보겠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사무엘 다윗 엘리야 엘리사 다니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에스라 느헤미야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지 못합니다.
이 사람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에 나타난 그들의 삶을 살펴볼 때, 그들은 하나님께 돌아온 사람들이고, 하나님을 진실하게 사랑한 사람들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겁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모른다고,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고 구원을 받지 못했을까요?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제가 드린 설명에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첫째로, 구약시대, 예수님의 존재가 이 땅에 임하기 전을 살았던, 그들의 구원문제는 우리가 단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으며,
둘째로, 성경에 나타난 그들의 삶을 살펴볼 때, 하나님을 진실하게 사랑했던 그들은 낙원에 있으리라는 겁니다. 예수님을 모른다해도 말이지요.
결론적으로, 구약시대, 또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세계 모든 열방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의 구원문제는 우리의 판단과 무관하게,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부분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억울하지 않도록, 선하게 판결하실 것을 믿으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 이후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의 문은 너무나 명백합니다.
행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우리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 십자가의 역할을 이해했습니다. 명백하게 주어진 그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는 것이 지금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구약시대 사람들의 구원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나의 구원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정작 그 말씀을 알지 못한다면,
저는 구약시대의 사람들보다, 지금 그 사람들의 구원이 더 염려가 됩니다.
수차례 말씀드리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우편에 달린 강도는 우리 신앙생활의 롤모델이 아닙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있는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제몸같이 사랑하느냐입니다. 그 삶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전혀 그러한 삶이 없이 예수님에게 “주여 주여”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정리하면, 구약 시대, 아브라함이나 다윗을 비롯한 여러 인물들의 구원은 우리가 염려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단정적으로 설명할수 없고, 우리가 설명한다해도 하나님이 그리하신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그 누구도 억울하지 않게, 선하게 조치하실 것임을 믿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누군가를 염려할 에너지가 있다면, 나 자신, 우리 가족들, 일가 친척, 이웃들을 향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저도 계속 돕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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